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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7] 한글라 2기 Farewell Party&한글라를 마치며 2019/06/08

황인진 2019/06/08 추천 0 / 신고 0 조회 :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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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te.hanyang.ac.kr/surl/qeH

내용

사실 , 대외활동 같은 것을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발견한 것이 한글라 포스터였다
포스터는 약간 흥미로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깊게 읽어보지 않았던 것 같다.
혹은 포스터라는 형식이 한글라를 담아내기엔 부족던 것 같다
.
처음 지원했던 나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영어 , 교환학생보다는 그냥 대외활동의 그 자체의 느낌을 더 갖고 있는 것 같다 .
고민 반 게으름 반으로 마감 4 시간 전부터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특이했던 점은 자기소개서를 파일로 받지 않고 구글 독스로 받았다는 것
새내기였던 나에겐 다 처음이기도 했다.

 
자기소개서 내용은 영어보다는 학생회 내용이 더 많았다.
갓 대학생이 된 나에게 스펙은 없었으니까 .
그래서 고등학생 자소서랑 비슷하게 썻다 .
대학에는 워낙 대단한 사람이 많았고 ,
자기소개서를 막상 써보니 별게 없었기에
약간의 기대는 했지만 각오는 했던 것 같다 .
사실 1 차가 붙었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면접 때의 기억이 매우 생생하다
 
나만의 면접 준비 방법인 마인드맵으로 이것저것을 적고
나름 면접에 맞게 포말하게 입고 갔다
처음가는 국제관이어서 조금 헤멧 것 같다.
내 면접 타임에서는 내가 가장 먼저 왔다.
미하게 기억이 나는데 면접 대기실에 있었던 사람은 호준오빠였다
면접대기실에서 마인드맵을 읽고 약간의 눈치를 보고 있으니 , 한 두 명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긴장한 상태였는데 들어온 사람들은 여유로워보였다 .
그리고 다들 어른 같았다
실제로 1-2 기의 한글라 연령은 높은 편이다 . 2기까지는 내가 혼자 99 막내였으니 !
5-6 명 면접도 처음이다보니 걱정이었던 것 같다
대기실에서 딱 1 명이 기억이 난다 어깨가 파인 원피스를 입은 윤지언니 .
 
면접에 들어가는 순서는 내가 가장 마지막이었다
면접실에 들어가자마자 내가 가장 긴장했던 이유는 ,
면접관 언니오빠들이 내가 그 당시 대학에서 본 사람들 중 가장 어른 같았다 .
5 명 모두가 다 큰 어른 같은 기분 , 약간 어른 어벤져스 같은 느낌
나도 대학생활을 쫌 하면 그렇게 되겠지 ? 라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는 정말 멋진 군단 같았다.

 
사실 한글라 면접은 지금까지 내가 본 면접 중 가장 못 본 면접이다
나중에 들었는데 나와 함께 면접을 본 사람들의 스펙이 유난히 좋았다고 한다
나만 일반고 출신이었고 나머지는 다 국제고 /외고 출신에 해외 인턴도 있었다
영어는 물론 파티 동아리 등 , 공부와 학생회 댄동 정도가 다 였던 나에겐 기가 죽는 스펙들이었다
게다가 한 언니가 독보적으로 잘하는 바람에 그 언니는 무조건 붙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면접 질문이 몇 개가 생각이 나는데 ,
기계과 같은 대형 과에서 학생회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보았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홍보하는 방법을 말해달라는 느낌의 질문이었다.

그때 너무 식상한 방법을 답했다 SNS.
면접끝나고 나서 진짜 꿀팁 같은게 떠올랐지만 이미 끝났을 때였다
영어 질문도 기억이 나는데 어느나라로 교환학생을 가고 싶냐는 질문이었다 .
문득 예지언니가 생각이 나서 ㅋㅋㅋㅋㅋ 언니한테 들은 중국 문화에 대해 배우고 싶고 우리학교에 중국인 유학생 /교환학생이 많다보니 궁금해졌다라고 답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계속해서 반복해서 했던 말은 아직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배우고 싶다 배워나갈 것이다 라는 말 들이었다
부족한 나에겐 배운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
누구와 함께 붙고 싶냐는 질문도 모든 참가자가 받았는데 나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언니를 뽑았다
나는 배울점이 많은 분인 것 같아서 뽑았다고 했다 .
나도 1 표를 받았는데 사실 왜인지는 모르겠다 . 그냥 혼자 생각하기로는 , 약간의 동정표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ㅋㅋㅋㅋ
1 년 전 임에도 이렇게 생생한 것을 보면 나에게 한글라 면접은 적지 않게 충격이었다
 
그렇게 뽐낼 것도 없는 나를 뽐내지도 못하고 , 내가 정말 별거 아니라는 것을 느낀 채 면접실을 나왔다
이건 정말 백프로 떨어졌다는 생각에 , 나름 시험기간에 준비했지만 안될 것이라는 확신에 ,
마음이 답답해졌다 .
공부도 안 될게 뻔해서 친한 선배한테 끝났다고 말하고 , 너무 우울해서 같이 빽다방 딸기주스를 마시러 갔다
딸기주스를 마시니 기분이 쫌 나아져서 공부 했다 .
너무 망쳤다보니 ㅋㅋㅋㅋ마음도 포기를 했는지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강의실에 있는데 연락이 왔다 붙었다고
그래서 바로 그 선배에게 전화하고 달려갔다.
포기를 해서서 그런지 더욱 기뻤다.
사실 나를 왜 합격시켰는지는 지금까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바로 그 선배 전화하고 달려갔다
어떤 활동을 시작할 때 배워가야지 한 적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내가 어떤 것을 배워가야지 예상을 하고 시작을 했을것이 아닌가 ?
근데 한글라는 예상 , 상상 그 이상을 경험한다 .
 

 
아 그 전까지만해도 모든 활동을 동기들과 함께하다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금방 드러낼 수 있었고 새로운 환경임에도 편했다.

나를 아는 사람이 1 명이라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한글라는 혼자 시작한 첫 번째 활동이다보니
나를 아는 사람도 없어서 너무 걱정이 되었다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싶었다
설렘보다 걱정이 먼저 였던 것 같다
특히 그 당시에는 자아 정체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던 당시였다
 
그러한 마음을 갖고 한글라 첫 번째 활동에 갔다 .
한글라의 첫번째 활동은 OT&LT 였다 .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국제관에서 모였다
 
그 날 미적1 이의 신청하는 시간이 한글라 OT&LT 시간과 일부 겹쳤다.
이의 신청 가면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해서 갈까 생각도 하였지만
그러다가 한글라 첫 만남에 늦을 것 같았다.
이의 신청 때문에 미리 준비하였지만 가지 않아 시간이 조금 비었고,
덕분에 OT에 미리 도착하였다.
 
가장 먼저 만난사람은 대광오빠였다
하와이? 태국? 에서 사온 듯한 옷을 입고 윤수언니, 민영언니와 티격태격하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
대광오빠는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스스럼 없이 대하는 사람이다보니
긴장을 조금 풀었던 것 같다
,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이과-공대를 가다보니
항상 여자가 적었고 한 공간에 여자가 10명이 넘는 환경, 단체에 있었던 적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여자가 많은 한글라가 익숙하지 않았고 더 어려웠던 것 같다
기다리고 있으니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오기 시작했다.
현아 언니의 첫 인상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키도 크고 예뻐서 얼음공주 같았다. 처음에 다가가기 힘들었다,,,ㅎㅎ
그래도 같은 신입 기수라서 말을 걸게 되었는데, 언니가 너무너무너무 착해서,,,, 가장 먼저 친해졌던 것 같다. 마침 같은 공대여서 대화할 내용도 있었던 것 같다. 계속 언니랑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처음에 기획팀의 분위기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지만, 모두 활발하고 통통 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가 느낀 처음 한글라의 분위기는 정말 끈끈하다 였다.
단순히 함께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느낌보다는 또 하나의 인간관계 같은 느낌
떠나게 되는 1기들을 위해 영상을 만들고, 사진을 찍고 우는 사람들을 보며
정말 끈끈한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과연 이 끈끈한 관계에 들어갈 수 있을까 라는 걱정도 들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처음 만나는 날이라 민망한데
1기들끼리의 끈끈한 이벤트를 한 덕분에 당시 약간 남겨진 기분...?
한글라를 하면서 들은 최종적인 느낌을 미리 말하자면, 한글라 내의 분위기는 그럴 수 밖에 없다. 좋은 사람들도 너무 많고, 지원언니가 내부적인 유대 관계에 정말 많은 노력을 쏟기 때문이다.
 
사실 LT를 크게 즐기지는 못했다.
워낙 술도 못마시는데 의리주 마시다가 금방 가기도 했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직 나를 다 드러내지 못했다.
그래서 너무 답답했다.
그냥 조용히 지나갔던 것 같다.
LT
끝난 당일에 바로 과 반엠티를 갔는데
과 친구들과 놀다가 내 정체성을 찾아서 그런지
훨씬 맘 편하게 놀 수 있었고
, 가장 즐거웠고 기억에 남는 MT를 다녀왔다.
 
-
 
사실 초반에는 한글라에 잘 적응하지 못하였다.
한글라에서의 나는 나 같지 않아 답답했다. 그로인한 걱정도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한글라에 마음을 열게 된 계기가 있다.
 
다른 때와 같이 답답한 마음과 걱정으로 헬로버디 행사를 갔다.
헬로버디는 교환학생 친구들이 한국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한국학생
1명과 교환학생 2-3명을 매칭하는 HY-BUDDYOT이다.
행사 때까지만 해도 이전과 같았다.
행사를 끝내고 홀에 있는 의자와 책상을 다 밖으로 빼고 있는 중이었다.
그 때 지원언니가 나의 면접에 관한 얘기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양대학교 기계공학부에 재학 중인 작은거인 황인진입니다.”
정확한 말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유치원생이 자기소개 하듯 저 말로 나를 소개했다고 한다.
그 것을 들은 다른 한글라 언니 오빠들과 함께 웃으며
비로소 한글라에 스며들게 되었다.
마치 김춘수의 꽃 중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 때부터 나는 진짜 작은거인이 되었다.
단순히 자기소개서에서 나를 설명하는 단어일 뿐이었는데,
이제는 진짜 나를 표현하는 다른 이름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글라를 정말 좋아한다.
내가 자아 정체성에 큰 혼란이 왔을 당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리 잡도록 만들어주었다.
 
현목오빠였나, 어느 날 누가 내게 말했다.
너 카톡프사와 배경화면 사진이 다 한글라 사진이라고.
나의 카톡 배경화면은 내가 속한 단체와 관련된 사진으로 하는 편이다.
그 당시에도 과 학생회, 동아리, 친구들 등 많은 단체에 속해 있었지만
한글라가 나에게 가장 우선순위 였다는 것이다.
1학년 2학기를 생각해보면 정말 한글라만 기억에 남는다.
 
-
한글라 3기 활동은 내게 굉장히 아쉬운 기억이다.
더욱이, 학생회장과 한글라 3기 임원진지원 중에 고민을 했었기에.
한글라를 너무 사랑했어서 3기에 임원진을 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학생회장이라는 기회도 다가왔다.
물론 임원진에 지원한다고 다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내적으로 학생회장을 선택했기에
20191학기는 학생회장과 한글라에만 집중하고 다른 활동은 더 안하기로 결심하였다.
 
처음에 1기 언니 오빠들이 떠났을 때 뭔가 믿기지 않았다.
비록 6개월을 함께한 사람들이지만, 더 오랜시간을 함께 한 것 같았고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보다 친했다.
그들이 없는 것이 너무 어색했고, 과연 신입기수와 잘 지낼 수 있을까
1기 언니 오빠들처럼 좋은 선배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걱정과 함께 시작했지만, 한글라가 정말 좋은 곳이라는 것을 신입기수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3LT 때 정말 열심히 했다
또한 나의 머릿속의 2기 LT기억을 지우고 싶었다.

LT 게임 팀원들이 내가 속했던 게임 팀원들 중 가장 잘해줘서
게임도 너무 즐겁게 했고, 술게임도 너무 즐겁게 했다.
비록 의리주 때문에 금방 죽고 힘들었지만,,,,,
덕분에 즐거웠고 많은 술게임을 배웠다는 말에 너무너무 뿌듯했고
앞으로 3기들이 더욱 한글라를 즐겁게 느끼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회장과 한글라를 병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내가 학생회장의 일들을 간과한 것 같다.
시간적인 여유도 여유지만, 학생회 이외의 것에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심적인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매 회의도 그냥 지나가듯 들렸고, 기억에 남는 행사도 별로 없는 것 같다.
Field Trip이 가장 열심히 한 행사 인 것 같은데,
작년 필드 트립은 같은 팀 교환학생보다 한글라랑 보냈던 시간이 더 많았던 아쉬움에
한글라와의 추억보다 같은 팀과 시간을 보내고자 하였다.
그래서 더더욱 한글라와의 추억이 없는 것 같다.
 
한글라가 끝날 무렵,
우연히 미영언니, 선하, 호찬오빠, 성현오빠와 피아이디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 때 처음으로 인간 대 인간으로 한글라 3기를 만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 못 참여했지만,  나를 스스럼 없이 대해주는 사람들이어서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그 날을 계기로 한글라 3기에 애정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뒤였다.
남아 있는 행사는 Tea CeremonyFarewell Party.
Tea Ceremony는 저번학기 내가 총괄을 했었고, 기획팀으로서의 능력을 제대로 기를 수 있는 성공적인 행사였다.
행사 당일 몸이 아파서 움직이기가 힘들었고, 내가 작년에 총괄이었지만,
그것보다 한글라와 한번이라도 더 만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출발했던 것 같다.
 
작년 Tea ceremony는 진행했던 장소가 워낙 좋았던 덕분에, 한글라뿐만 아니라 교환학생도 만족도가 높았던 행사였다.
그래서 작년의 경험이 떠올라 이것저것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행사에 참여도 잘 안하면서 입으로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조용히 하게 되었다.
이것저것 얘기하는 것 자체가 꼰대이긴 하지만,,,,ㅎㅎ
미안했다.
 
예정되었던 페어웰 파티마저 취소가 되면서 참가할 수 있는 마지막 행사가 사라졌다.
마지막 회의 날, 한글라끼리의 캠핑이 잡혀있었다.
심적인 여유가 없었던 나는 안가기로 했었으나, 이번이 3기들과 친해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급하게 있는 짐을 챙겨서 함께 떠났다.
사실 떠나기 직전부터 캠핑장에 들어가기까지 많은 생각을 하고 눈치를 봤던 것 같다.
내가 과연 이 자리에 함께 해도 되는 사람인가
이러한 생각을 하도록 만든 나의 과거 행동들이 미웠고 원망스러웠다.
감사하게도 함께 간 사람들은 스스럼 없이 대해줬으며, 또 하나의 추억을 남기게 되었다.
 
3기를 마무리하며.
3, 특히 기획팀 언니 오빠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럼에도 잘 대해준 3기들이 너무 고맙다.
 
눈치없이 OB가 가면 싫어할라나...??
불러주면 언제든지 갈 예정이다!!
많이 불러줘요 난 아직도 같이 한글라를 하는 것 같아.
 
-

한글라에서 웰컴파티, 필드트립, 다도체험 등의 행사를 진행하면서
외국인 친구들과의 추억, 행사 기획력 등 많은 것을 배워간다.
그러나 내가 한글라를 가장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사람들이다.
한글라에서 만난 수 많은 인연이 또 다른 것으로 연결되고 나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아직은 모두가 아쉬워하고 나도 특히 아쉬운 부분이지만,
한글라는 수료라는 제도 때문에, 수료한 사람은 더 활동을 이어나갈 수가 없다.
그래도 OB&YB 행사 등을 통해 이러한 인연들을 이어나가고 싶다.
 
아직은 매주 금요일이 비어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언젠간 익숙해지고 내가 실감이 나지 않는 다는 사실이 잊혀지겠지
그러나 한글라는 절대 잊고 싶지 않다.
나를 가장 성장하게 만든 곳.

같이 활동한 1기, 2기, 3기 모두 고맙고 사랑합니다.

한글라는 내가 속해 있던 단체 중 가장 완벽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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